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십자가1-반론
    십자가인가 고통의 기둥인가? 2010. 3. 2. 00:34

     

    이사야 54:17 너를 치려고 만들어지는 무기는 무엇이든지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재판에서 너를 거슬러 일어나는 혀는 모두 네가 정죄할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의

    종들의 유산이며, 그들의 의는 내게서 나온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십자가를 주장하는 반론자는 증인의 주장을 자기 방식으로 변질시키고 왜곡하여

    그 변질되고 왜곡된 자기 주장을 증인의 주장으로 덮어 씌우며 자기 주장에 대한

    반박을 증인의 주장에 반박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반론자는 교묘하게 왜

    곡된 자기 주장에 대한 자기 반론에 자신이 빠져 확신에 차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

    습니다. 그러나 현명하고 객관적인 독자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원래 반론자(십자가 옹호자)는 증인과 어느 대학생이 대화한 다음의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대학생이 반론자에게 문의한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십자가에 대한 얘기 말입니까? 고전(여기가 중요) 그리스어에서는 스타우로

    스라고 하는 말은 곧은 형주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2개의 형주를 십자로 한 것)의 기원

    은 서기 3 세기의 반으로 되어 있습니다(바인저, 「신약 성서 용어 해설 사전」참조). 즉, 그리

    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죽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의 책에서는 십자가는 나오지 않

    습니다(「고통의 기둥」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반론자:신세계역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저는 개인적으로는 허용 할 수 있습니다. Liddel

    &Scott의 그리스어의 사전에는 분명히「cross」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아마 그 사전은 3 세기 이후의 스타우로스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

    요한 것은 그 당시 즉 예수가 계신 당시입니다. 말은 시대와 함께 바뀝니다. 그리스어도 고대의

    단어를 현대의 의미로 읽는 것은 어떨까요?

     

    만일「스타우로스」에 16 세기경 「성형」이라고 하는 의미가 추가되었다고 합시다. 어떤 번역

    자가 1 세기에도 「성형」이라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고 착각해 사도 5장 30절을「여

    러분이 성형에 달아 죽인 예수를 일으키셨습니다.」라고 번역하면 믿겠습니까? 이 의미가 3 세

    기 이후의「십자가」라는 의미로 번역한 것이라면 어떻습니까?

    신세계역은 가능한 한 엄밀하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라고 해도 플라톤(Platon)시대의

    고전 그리스어와 예수시대의 그리스어와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의미, 스펠, 발음이 말에 따라서

    는 전혀 다릅니다. 일본어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발음은 전혀 다른 완전히

    별개의 언어라고 생각됩니다. )

     

     「십자가(크로스)」와「곧은 형주(스타우로스)」의 어느 쪽이 올바른 것일까요? 보통 성서의

    번역은 잘못되어 있지 않습니까?

    대답을 기다겠습니다.

     

     반론자의 글 

     

     그럼, 협회의 주장은 어떠한가? 자세한 내용은 본론에서 전개한다. 그러나, 간단하게 말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그리스어의 스타우로스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에도, 중간단계의 그리스어에도 십자가라고 하는 의미는 없고 「곧은 기둥」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4 세기가 되고 나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교 상징물인 십자가를 그리스도교에 가져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고 믿게 했다.」

     

     2. 그런데 인터넷상에서 논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이하, 증인이라 한다.)은 그리스어를 고전, 예수당시의 시대, 현대의 그리스어 3가지로 분류해 「그리스어라고 해도, Platon의 시대의 고전 그리스어와 예수시대의 그리스어와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의미, 스펠, 발음이 말에 따라서는 전혀 다릅니다. 일본어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을 하고 있다

     

    3. 이 글에서 증인은 여기 스타우로스의 현대 그리스어의 의미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상기의 발언은 고전의 스타우로스와 예수당시의 그리스어 스타우로스는 의미가 다르다 라고 말하려고 한 듯싶다. 그런데 그렇게 된다면 고전은「형주」라는 의미이고 예수 시대의 그리스어로는 「십자가」라고 하는 결론이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이 없다. 이것으로는 화자는 부정하고 싶은 것을 증명해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반론 첫째,

     

    우선, 반론자는 글 1 에서부터 증인의 주장을 자기식 표현으로 왜곡시켜 주장하고 있다.

    반론인의 글 1과 네모안의 증인주장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유한다.

    네모안의 증인주장중에서 “그런데 4 세기가 되고 나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교 상징물인 십자가를 그리스도교에 가져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고 믿게 했다.」

    에 해당하는 내용이 나오는가?

     

    나는 몇 번을 읽어보았지만 그러한 내용은 없다. 순전한 반론자의 창작글이다. 반론자는 이렇게 자기가 엉뚱한 내용을 갖다 붙이고는 이것이 증인이 말한 내용인양 덮어 씌우고 있다. 그런데 나중에 나오겠지만 자기가 한 이말에 대하여 반박하고 있다

    희한한 논법이다.

     

    그리고 글 2에서 증인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글 3에서 또다시 반론자는 증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을 무시하고 자신이 논박하기 쉽게 증인의 주장을 변질시켜 왜곡되게 이해하고 자신이 변질시켜 왜곡되게 이해한 내용을 가지고 증인의 주장대로라면 예수시대 그리스어로는 십자가라는 결론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희한한 논법이다. 자기가 증인주장을 왜곡되게 구부려 이해하고 (결국 자기 주장임) 그 잘못된 이해의 바탕위에 자기 주장을 자기가 반박하며 증인이 자가당착한 것처럼 덮어 씌우고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살펴보자.

    글 1은 후에 다시 나오므로 글 3부터 살펴보았다. 반론자는 증인의 말을 다음의 두가지로 이해하였다.

     

    1) 증인은 현대 그리스어의 의미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2) 증인은 고전의 스타우로스와 예수당시의 그리스어 스타우로스는 의미가 다르다라고 말한 것이다.

     

    나는 아무리 증인의 글을 읽어보아도 증인의 말이 위와 같이 이해되지 않는다.

     

    증인은 예수당시의 스타우로스의 의미와 3세기 이후에 ‘십자가’ 란 내용이 추가되어 내려온 스타우로스의 현대그리스어의 의미(즉 스타우로스를 십자가로 번역하고 있는 현대)를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반론자에 의해 잘못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증인은 고전의 스타우로스와 예수당시의 그리스어 스타우로스는 의미가 다르다라고 말한 내용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반론자는 1) 2)와 같이 이해한 것처럼 교묘히 말하고 있다, 반론자는 그리스어에 대한 학식을 은연중 자랑하고 있다. 이 정도 논리를 구사하는 사람이 증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잘못이해하고 있을 리는 없다. 오로지 증인의 말을 반박하기 위하여 교묘한 말로 증인의 말을 슬쩍 구부려 변질시켜 놓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을 논박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 구부려 이해한 바탕위에 증인이 예수시대에 그리스어로는 십자가라는 주장을 하였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여호와의 명령을 구부려 하와에게 역으로 교묘하게 질문한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는데...) 뱀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맡기겠다.

     

    증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은 다음의 말인 것이다.

     

    증인의 말.

    중요한 것은 그 당시 즉 예수가 계신 당시입니다. 말은 시대와 함께 바뀝니다

     

    반론 둘째

     

    반론자의 글

     

     혹은, 혹시, 이 증인은 3 세기 중반 이후의 그리스어를 현대 그리스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스타우로스에 대해서는 고전과 중세의 차이가 아니고, 고전 및 중

    세와 현대 그리스어 사이의 차이를 문제 삼아 논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야기의 앞뒤는 일단 맞는다. 그러나 3 세기의 그리스어를 현대 그리스어

    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런 의미는 협회가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것이 된다.

     

    증인의 말

     

    그리스어라고 해도 플라톤(Platon)시대의 고전 그리스어와 예수시대의 그리스어와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의미, 스펠, 발음이 말에 따라서는 전혀 다릅니다

     

    반론자는 증인의 말을 또 다시 다음과 같이 왜곡하고 있다.

     

    1) 스타우로스에 대해서는 고전 및 중세와 현대 그리스어 사이의 차이를 문제 삼아 논하

    고 있는 것이다.

    2) 그렇다면 3세기의 그리스어를 현대 그리스어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 1) 스타우로스에 대해서 변화된 것을 논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증인이 3세

    기의 그리스어를 현대 그리스어에 포함시킨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3세기 그리스어를 현대 그리스어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은 반론자가 왜곡하기 위하여

    해설한 주장이다.

     

    그리스말을 고대, 중세, 현대로 표현한다면 예수당시와 3세기는 분명히 중세에 속하여

    야 할 것이다.

     

    증인의 말을 다시 한번 보자.

     

    “고전 그리스어와 예수시대의 그리스어와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의미, 스펠, 발음

    말에 따라서는 전혀 다릅니다”

     

    증인의 말의 핵심은 3세기를 중세에 귀속시키며 현대와 의미가 다르다는 내용이 아니며

     

    또한 증인은 고대, 중세, 현대로 시대적 구분을 하고자 하는 의도도 아니고 단지 말에 따

     

    라서는 의미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는 것을 상식적인 선에서 전달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단지 스타우로스의 경우가 그 예에 속하여 그 달라짐이 최초

     

    로 나타난 것은 3세기 이후라고 말한 것 뿐이다. 굳이 사족을 붙여 설명한다면 3세기 중

     

    반이후 십자가 의미가 추가되어 현대까지 이어져 현대 그리스어에서는 기둥, 막대의 의

     

    미이외에 십자가란 의미가 들어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설마 반론자는 고대, 중세, 현대는 몇세기 단위로 딱 구분지어 지며, 예를 들어 현대가

     

    17세기 이후라고 한다면, 스타우로스에 십자가란 의미도 딱 17세기에 들어서서 삽입되

     

    고 통용되어야만 현대 그리스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까? 예수시대와 3세기를 중세라

     

    고 한다면 중세의 언어는 반드시 기원 1년부터 새로운 의미로 통용되어야 한다고 주장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식의 주장이라면 현대가 3세기에 시작되어야 한다는 반론자의 주장도 맞다.

     

    그러나 소위 그리스어에 정통한 학자로서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언

     

    어가 그런식으로 세기를 정해서 의미가 나타나고 통용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은 반론자

     

    가 더욱 잘 알고 있지 않았을가?

     

    그럼에도 위와 같이 반론을 위한 반론으로 교묘한 억지 주장을 하고 있으니 반론자가 진

     

    정으로 성서의 내용을 알고 싶어하며 여호와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맞는가?

     

     아무리 어떻게 반론자를 이해해 보려고 해 보더라도 반론자의 논리구사력과 그리스어

     

    에 정통한 학문적 수준을 자랑하는 것에 비하여 자신의 논리가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어

     

    있는지를 모를 정도의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반론자의 동기를 알고 싶다.

     

    아니면 반론자는 궤변론자인지도?!

     

     

    바인의 사전인용에 대하여

     

    반론자는 다음과 같이 같이 비꼬고 있다.

     

     이 증인은 바인의「신약 성서 용어 해설 사전」을 기본으로 해「십자가(2개의 형주를

    십자로 한 것)의 기원은 서기 3 세기의 반으로 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바인이 그러한 것을 말하고 있을 리가 없다. 실제, 바인은 십자가는 고대 카르디

    아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기원전 7 세기의 일로 화자가

    주장하고 있을 때보다 대략 천년 전이 된다.

     

     오히려, 바인의 저서가 말하고 있는 것은 3 세기 중반 무렵까지는 다양한 형태의 십자

    가의 심볼이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안에 비집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협회는, 바인의 서적

    의 이 곳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물론 이 반론자는 학문적인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증인은 학문적 배경은

     

    없다. 이것을 악용하여 은근슬쩍 증인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증인이 십자가의 기원이라고 한 것은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된 것을 의미하

     

    는 것이라는 것쯤은 반론자가 알았을 것이다.

     

    오히려, 바인의 저서가 말하고 있는 것은 3 세기 중반 무렵까지는 다양한 형태의 십자가

     

    의 심볼이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안에 비집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라는 반론자의 말로 볼

     

    때 증인이 바로 이 말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을까?

     

    우월한 입장에서 한번 눌러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 바인은 분명히 3세기 중반까지 십자가 심볼이 그리스도교국의 교회안에 들어왔

     

    다고 말한 것이 사실임을 반론자가 입증하고 있다.

     

    또한 십자가는 고대 카르디아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면서 기원전 7세기를 지적하

    고 있다.

     

    그렇다면 반론자는 십자가는 그리스도교국의 독특한 것이 아니며 이전부터 이교도들이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교도들은 태양신을 비롯한 각종 우상숭배에 빠져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

     

    양한 형태의 십자가 심볼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숭배용으로 형상을 만드는 것은 상징된 것이건 아니건 금하셨다.

     

    유대인들은 이교도와는 달리 숭배대상을 상징물도 만드는 일은 없었다.

     

    이것은 십자가 문제와 관련하여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귀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묵상해 보도록 권유하고 싶다.

     

    그 다음 반론자는 이어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협회는 이 바인의 견해를 채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략 백

     

    년 늦은 4 세기의 반 당시에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교

     

    의 심볼인 십자가를 그리스도교에 가져와 심었다는 것이 협회의 견해이다. 이러한

     

    진기한 생각을 지지하고 있는 서적은 내가 지금까지 조사한 책 중에는 없다. 있다면 연

     

    락 바란다.

     

    나는 반론자의 이 주장이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를 협회책에서 찾지 못하였다.

     

    단지 위에서 반론자의 주장 1 “그런데 4 세기가 되고 나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교

     

    상징물인 십자가를 그리스도교에 가져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고 믿게 했다”

     

    서 발견한 문장이다. 이것이 다시 반론자가 바로 위와 같이 자기 말로 주장하며 이것이

     

    협회의 견해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시 반론자가 증인들의 주장에서 조합하여 자신의 말을 새로이 만들어내고는 그것이

     

    협회의 견해라고 주장하면서 진기한 생각이라고 공박하고 있는 것이다. 희한한 논법이

     

    고 희한한 논리이다.

     

    협회에서 나온 내용을 살펴보겠다.

     

    바인인용부분

     

    이 점에 관해 W.E. 바인이 하는 말에 유의해 보자. “스타우로스”는 주로 곧은 말뚝 혹은

     

    기둥을 의미한다. 그런 것에 범죄자들을 못박아 처형하였다. 그 명사 그리고 기둥이나

     

    말뚝에 고정시킨다는 뜻의 동사 스타우로오는 둘다, 두 개의 막대가 엇갈려 있는 교회식

     

    십자형태와는 본래 구분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그리스어 학자 바인은 두 토막으로 된

     

    십자가가 칼데아에서 기원한 것에 대해, 그리고 기원 3세기에 어떻게 그리스도교국이

     

    이교도들에게서 그리스도가 기둥에 못박힌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였는

     

    지에 대해 언급한다.-바인의 신구약 단어 해설 사전, 1981년 1권, 256면

     

     

    콘스탄티누스 황제 인용부분

     

    협회는 수형자 처형시 “고대 여러나라에서 기둥에 다는 일을 하였는데 그 방식은 다양하

     

    였다”라고 하면서 아시리아, 페르시아, 이집트등을 인용한 후~~

     

    “그리이스 인들과 로마인들은 기둥에 다는 페니키아인들의 관행을 받아들였으며, 이런

     

    관행은 콘스탄티누스 시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국내에서 폐지되었다고 한다.”

     

     

    라고 하였다.

     

    바인의 글에서는 “기원 3세기에 어떻게 그리스도교국이 이교도들에게서 그리스도가 기

     

    둥에 못박힌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언급한다” 라는 말로

     

    기원 3세기 이후 이교도들에게서 십자가를 받아들인 것을 언급하고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인용부분에서는 기둥에 다는 처형방법이 콘스탄티누스 시대가 되어

     

    서야 폐지된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위의 글 어디에서도 대략 백년 늦은 4 세기의 반 당시에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교의 심볼인 십자가를 그리스도교에 가져와 심었다는 것

     

    이 협회의 견해

     

    라는 반론자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는 부분이 없다

     

    반론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둥에 다는 처형 방법을 폐지한 것을 반론자는 십자가

     

    를 그리스도교에 가져와 심었다는 것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혹시 이  반론자는 이 두 개의 글을 조합하여 자신의 말로 새로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닐까? 그러므로 이러한 진기한 생각을 지지하고 있는 서적은 내가 지금까지 조사한

     

    중에는 없다. 있다면 연락 바란다. 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반론자 자신이 증인의 협회의 두 개의 별개 주장을 묶어서 하나로 만

     

    들어 새로운 주장을 펼쳤으니 어떤 책에 그러한 내용이 나와 있겠는가?

     

    협회의 입장을 내가 이해한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협회는 기원 3세기 이후 이교도의 상

     

    징인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에 들어왔다는 것이고 그 이후 십자가는 계속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기둥에 다는 처형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시절에 폐지되었다는 내용이다. 즉 처형의

     

    폐지만을 다루고 있다.

     

    로마의 처형방식과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숭배 혹은 사용은 별개인 것이다.

     

    그런데 반론자는 처형방식과 십자가 숭배를 혼합하여 갑자기 콘스탄티누스가 처형방식

     

    을 폐지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 숭배를 들여온 것으로 주장한 것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즉 콘스탄티누스 시대까지 처형은 기둥에 다는 것이었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사용

     

    하고 있었는데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는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한 것으로

     

    이해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하면서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할 수 밖

     

    에 없는 입장에서는 예수를 처형한 방식인 기둥에 다는 처형방식을 폐지할 수 밖에 없었

     

    던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하면 콘스탄티누스는 기둥에 다는 식의 처형방법을 폐지하였지 십자가를 들여

     

    온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십자가가 들어온 것은 기원 4세기 반경의 콘스탄티누

     

    스 시대가 아니라 100년전인 3세기 반에 이미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콘스탄티누스는

     

    십자가 숭배가 이미 진행되고 있던 배교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삼았을 뿐인 것이다.

     

     

    그것을 반론자가 조합하여 두가지 인용구를 혼합하여 하나로 말을 만들어 ‘워타 협회에

     

    서 “콘스탄티누스가 십자가를 도입하였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덮어씌우며 자기가 만든

     

    말에다가 진기한 생각이라고 역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주장한 책을 제시해 보라고까지 밀어붙인다.

     

    반론자의 기상천외한 내용을 어느 누가 어느 책에서 발견할 수 있겠는가?

     

    반론자의 특징은 문장이나 글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려고 하지 않고 그

     

    중에서 몇몇 단어나 문장만을 뽑아서 반론하고자 하는 주장으로 만든다음, 그러한 자기

     

    가 만든 주장을 증인들이 주장한 것으로 덮어 씌우면서 자기 주장에 대해 황당하다는 식

     

    으로 반론을 하고 있다. 자기가 황당한 주장을 만들어 자기의 황당한 주장에 자기가 반

     

    박하는 형식이 반론자의 글 전체에 흐르고 있다.

     

    반론자는 자신의 논리오류를 짚어 준 사람이 지금까지 없이 목사라는 신분에서 존경만

     

    을 받기에 익숙했었던 것은 아닐까?

     

    하여간 협회자료 찾느라고 진을 빼고 반론자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자료가 없어서...

     

    허탈해서 한번 웃었다.

     

    반론자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협회는 이 바인의 견해를 채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략 백

     

    년 늦은 4 세기의 반 당시에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교

     

    의 심볼인 십자가를 그리스도교에 가져와 심었다는 것이 협회의 견해이다.

     

    에 대한 출처를 명확하게 밝혀주기를 바란다.

     

    다음 이어 지는 글도 그냥 웃었다.

     

    반론인의 글.

     

     물론, 필자는 이 화자를 절대로 탓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어떻게

     

    대답하면 좋은지, 필자가 이 편지에서 당황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

     

    유인즉 이런 종류의 학문적인 논의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 논점을 명확하게 한 후 진

     

    행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위의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반론인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상당히 당황했으며 반

     

    론인만을 탓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보았다. 아마도 반론인은 목사로 지도자적 위치에만

     

    있어 보았지 남에게 비평을 받아 본 일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논리전개 방식

     

    이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있는지 자체를 몰랐을 것이라는 것이 솔직한 나의 입장이다.

     

    왜냐면 그의 글은 학문적 태도는 갖추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종류의 학문적인 논의는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 논점을 명확하게 한 후 진행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다.

     

     

    그러면서는 그는 논점을 명확하게 하는 면에서 자기만의 주장을 새로 만들어 명확하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반론자의 글

     

    다만, 한 가지만 증인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협회의 출판물속에서만의 사고에

     

    한정되어 협회가 가르치고 있는 교리를 지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부탁은 내가 반론인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반론인은 보편화 되어있는 기성 기독

     

    교계의 사고에 한정되어 성서가 참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

     

    지, 한번 생각해 보고 자신의 알고 있는 내용을 객관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검토해 볼 생

     

    각을 해 보도록 권유할 따름이다.

     

     

     

    서적을 집필한 이유  에 대하여

     

    필자는 사족은 없애고 본 내용에만 비평하도록 하겠다.

     

    반론자의 말

     

     그럼, 왜 필자는「십자가인가 형주인가?」 등이라고 하는 문제를 논할 마음이 생겼는

     

    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파수대」지의 문장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교국의 교인이라면, 교회에서는 당신에게 십자가가 이

    교의 상징물이라고 말해 준 적이 있는가? 만약 말해주지 않았다면 교회는 당

    신에게 진리를 감춘 것이다. 오히려 교회에서는 신도들에게 이 명백한 이교

    의 상징물을 숭배하도록 권하여 왔다. (한국어 파수대 1968년5월15일호234면)

     

    십자가는 속죄의 상징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십자가를 자신의 죄가 사해졌던 그리고, 하

    나님과 사람이 화해할 수 있게 된 근거의 상징으로 본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가 멀

    리된 그런 간격이 예수의 죽음으로 즉, 십자가 위에서의 승리로 제거되었던 것이다. 죄

    와 죽음은 거기에 따라 멸해졌다. 사탄(satan)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가 거기에서 선언되

    었던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것의 함축적인 상징이 바로 십자가다.

     

     그러나, 증인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러한 십자가 이해는 배교 한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의 생각이며 성서의 가르침은 아니다, 라고....

     

     진실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십자가의 이해야말로 성서의 주된 목적중의 하나이며 가

    르침이다. 그것을 증인의 분들이 알아주실 필요가 있다. 이러한 중요성이 본서를 집필한

    이유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반론자는 또 하나의 오해를 하면서 자기 말을 만들어 그것을 비평하

     

    고 있다.

     

    증인들은 십자가가 아닌 기둥에서 돌아가신 것을 밝혀 말하고 있지 기둥에서 돌아가신

     

    것의 의미를 부정한 적이 없다.

     

    그런데 반론자는  그러나, 증인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러한 십자가 이해는 배교 한 그

     

    리스도교국의 교회의 생각이며 성서의 가르침은 아니다, 라고....

     

    하면서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 하면서 마치 증인들이 성서의 진실된 가르침을 모르는 사

     

    람처럼 호도하고 있다.

     

    "증인들은 생각할 것이다" 자체가 반론자의 생각이다. “죄와 죽음은 거기에 따라 멸하여

     

    졌다” 라는 그의 주장은 별도로 심도있게 논의할 장이 있다면 하겠지만 나머지 의미는

     

    증인들도 고통의 기둥의 의미에 있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중에 속한다.

     

    아마도 반론자는 증인들과 한번도 진지하게 성서토론을 해 본일이 없는 사람임이 분명

     

    하다. 단지 처음에 제시한 증인이 십자가 문제를 다룬 내용만을 가지고 증인을 판단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얼마나 자신만의 세계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인가? 그의 불찰만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

     

    다. 예수그리스도도 1세기 유대인들에게 자신들과 다른 믿음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배척

     

    받지 않았는가?

     

    1세기에 성경을 면밀히 검토하고 예수의 출생과 행적을 비교했더라면 예수가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분별할 수 있었을 텐데, 더구나 성경에 능통한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은

     

    왜 몰랐을까? 자신이 알고, 생각하고 있던 사고와 다른 내용은 무조건 배척하였기 때문

     

    에 진정한 메시야를 몰라보았던 것이 아니던가!

     

     

    이 반론인 목사 역시 그러한 오류에 사로잡혀 있는 데,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신이 상징으로건 숭배이건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형상이 이교도들도 많이 사

     

    용하고 있던 것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무엇인가 고개를 갸웃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반론인의 말

     

     바울은 십자가가 유대인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린도전서 1

     

    장 18절). 그러나 만약 이런 형식적인 어떻게 죽었는지만을 살피고 왜 죽었는지를 더 깊이

     

    묵상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십자가는 여호와의 증인에 있어서도, 다른 사람에게도 미련

     

    한 것이 된다. 또, 십자가에 적대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하고 있다(빌립보서 3장 18절).

     

    십자가 대신에 고통의 기둥이라고 변경하고 자기의 주장내용을 읽어본다면 증인들이 십

     

    자가만의 형식적인 죽음이 아니라 왜 죽으셔야 하였었는지, 더 나아가 기둥에 죽으신 분

     

    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으로 변질되어야만 했는지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

     

    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여호와의 증인도 십자가에 적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이 형주를 가지고 그런 발언을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증인들이 십자가란 형식에만 중요시 한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래서 증인들은 반론자의 주장을 보고 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가 잘못이라는 형식적인 면만을 보면서 고통의 기둥 자체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

     

    는 증인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보더라도 반론자의 증인에 대한 몰이해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반론자의 말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디모데후서 2장 14절)

     

     

    참 바쁜 내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 십자가에 대한 문제에까지 반론을 써야만 하는지

     

    위의 구절은 내가 다시 반론자에게 인용하고 싶은 구절일 뿐이다.

     

    하도 교묘하게 자신의 아전인수격인 주장을 증인의 주장으로 은근슬쩍 변경시켜 그것을

     

    공격하는 논리에 순진한 어느 증인 청소년이 당황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으니,,, 정말 나에게는 유익이 하나도 없지만 교묘한 논리에 농락당하는 진실된 그

     

    리스도인들을 위하여 펜을 잡았을 따름이다.

     

     

    제1장 협회의 주장 에 대하여

     

    1. 러셀 시대, 십자가는 심볼 마크였다

     

    2. 러더포드가 기둥이라고 말하기 시작하다

     

    위의 목차내용은 증인들이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그에 대한 것은 몇몇 믿음의 사람

    을 예로들어 이해를 시키고 간단히 넘어가도록 하겠다.

     

    다니엘- 하느님의 성령으로 꿈을 해석하였지만 마지막때까지 봉한 내용을 이해하였는가?

     

    요시야- 역둘 34:2

     

    그는 여호와의 눈에 옳은 일을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었고 오른쪽으로나 왼쪽

    으로나 벗어나지 않았다

     

    그 통치 8년에 (16세) 그의 조상 다윗의 하느님을 찾기 시작하고 12년에 산당, 신성한

     

    목상, 새긴형상, 주조한 상을 깨끗이 하고 바알들의 제단을 무너뜨렸다.

     

    18년에 하느님 여호와의 집을 보수하게 하였다. 그때 율법책이 발견되고 그는 즉시 자기

     

    의 옷을 찢었으며

     

    역둘 33:33

     

    그후에 요시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모두 없애 버리

    고...

     

    *요시야는 처음부터 가증한 행위를 모두 알았는가?

     

    요시야는 처음부터 여호와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은 있었으나 잘못된 것을 모두 알고 있

     

    지는 않았다. 그러나 차츰 알게되고 율법책을 발견하고 다시 잘못된 것을 알게 됨에따라

     

    차츰 차츰 산당, 주조한상, 몰렉, 도벳, 밀곰숭배등의 우상숭배를 제거해 나갔다.

     

    사도들 - ‘이스라엘을 회복시킴이 이때니이까?“ 예수는 이스라엘을 그 당시에 회복시키

     

    는 것이었는가? 사도들도 당시에 몰랐다.

     

    요한 - 계시록을 집필하였으나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가? 모른다.

     

    증인들의 통치체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한다.

     

    선포자책 146-147쪽

     

    “여호와의 증인의 현대 역사에서 반영된 바와 같이.... 그들은 때때로 불완전한 개념을

     

    가졌으며 심지어 부정확한 개념을 갖기도 하였다. 그들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특정

     

    한 예언들이 성취되기 시작할 때까지는 그 예언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여호와께

     

    서 영을 통해 자신의 말씀에 더 많은 빛을 비추심에 따라 그분의 종들은 겸손하게 기꺼

     

    이 필요한 조정을 하였다. 그러한 점진적인 이해는 그들의 현대 역사 초기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얼마나 겸손한가?

     

    성경에 기록된 여호와의 종들도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알지 않았다. 증인도 그러하다..

     

    그러나 요시야 처럼 진리를 알게되면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따라서 십자가, 수혈 모두 행하였었더라도 뜻을 분별하게 되는 순간 그것을 제하여 버림

     

    으로써 성서대로 살려는 순수한 마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누가 여호와의 종인가? 자신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기독교의 지도자들인가? 진리가 밝혀지는 대로 온갖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에 따

     

    르는 여호와의 증인인가?

     

     

    삽화 그림에 대하여

     

    필자는 이 삽화에서 가장 당황했었다

     

    그러나 이 삽화반론은 반론자가 한 것인지 Annajames란 사람의 주장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림이 그려진 시기를 알고는 어이가 없었다.

     

    그림밑에 그대로

     

    “Painting by Gerome, 1883" (그림, 제로옴,1883)

     

    이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이 1세기의 그림이라면 정말 확실한 증거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이미 십자가에 중독되어 있는 19세기 즉 1883년도에 그린 그림이다.

     

    이것을 가지고 1세기에 십자가형에 처해 진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정도의 논리력이라

     

    면 자신의 논리력을 심각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어떤 주장을 입증하는데 있어서 기본

     

    이 조금 부족한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3. 변경한 역사적 배경

     

    이 글은 반론자의 아전인수격 해석이 주류를 이루므로 위의 요시야왕을 포함한 믿음의

     

    사람의 예와 여호와 증인의 솔직한 글로서 반론은 갈음하고자 한다.

     

     

    다음 문제로 넘어가고자 한다

     

    반론자의 글

     

    협회의 내용중 사실인 것을 먼저 다음에서 지적해 두자

     

    그러나 협회의 주장에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다. 그럼, 그것이 무엇인가? 다음에서 살펴보자.

     

    1) 예외적이지만 그리스도교국의 출판물 안에도 그리스도를 형주에 매달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서적은 몇 개가 존재한다.

    2) 그리스어의 「스타우로스」라고 하는 말은 원래 한 개의 봉이라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3) 예수의 형구에 대해 신약 성서의 5개소에 있어 「크실론」이라고 하는 그리스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통상「나무」를 의미하고 있다.

    4) 십자가와 관계가 있는 도안은 고대부터 여러 지방에서 이교의 신앙의 심볼로서 이용된 가능성이 있다.

    5) 1, 2 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던 적이 있어 우상으로 오해 받는 것 같은 상을 만드는 것은 피하려고 했다.

    6) 4 세기 이후 그리스도교의 사이에는 십자가가 그리스도교의 심볼로서 채용되게 되었다.

    1) 우선, 컴패니언 성서이든 바인의 사전이든 “스타우로스”라고 하는 그리스어의 설명 부분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견해가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이다. 협회가 인용하는 서적의 견해는 다른 서적에는 거의 발견할 수가 없는 소수의견이다. 물론, 소수의견이기 때문에 진실하지 않다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진실한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신중하게 검증될 필요가 있다, 라고 하는 것이다.

    2) 권위 있는 사전은 모두(내가 조사한 모든 것으로 문자대로 모두), 「스타우로스」는 원래는 한 개의 봉으로서 사용되고 있었지만, 예수 시대의 로마 세계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형태의「십자가」라고 하는 형구에 대해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밝히고 있다.

    3) 히브리어에는 십자가에 해당되는 말은 없고 십자가는「에이트(목)」이라고 하는 말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에이트」라고 하는 히브리어에 70인역 그리스어 구약 성서가 「크실론」이라고 하는 역어로 사용되었기에 유대인의 세계에서는 크실론이라고 하는 그리스어에는 십자가라는 단어와 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4) 그리스어 「크실론」은 원래 「나무」를 의미했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다양한 것에 대해서도 사용되고 있어 십자가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다.

    5) 1 세기부터 3 세기에 걸친 교부들의 문서는 예수의 처형도구는 한 개의 기둥이 아닌 전통적인 십자가의 형태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많이 등장한다.

    6) 고고학적인 발견은 예수의 처형도구가 한 개의 형주가 아니라 전통적인 십자가의 형태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7) 그리스도인이 십자가를 그리스도교의 상징물로서 도입한 것은 이교의 신앙과 타협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중요시한 결과이다.

    8)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십자가형을 그리스도교의 신앙으로부터 보건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로마 제국 안에서는 십자가에 의한 사형을 폐지했다.

    . 다음에 계속

Designed by Tistory.